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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교역자 수련회 나눔 자료
강석제 목사 목회관
글쓴이: 강석제 목사 (2018년 12월)
이 문서는 2018년 교역자 수련회에서 나눈 것으로서, 오타와한인교회 목회자들이 담임목사의 목회관을 이해하고, 공동의 목회관을 가지고, 개인의 목회관을 형성하도록 돕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I. 목회자론
‘목회’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목양의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 1) 복음을 선포하고, 2) 예배를 인도하며, 3) 교인들을 돌보고, 4) 교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며, 5) 자신의 영성을 돌보는 것, 이 다섯가지 사역은 성경이 말하는 목회의 다섯 물매돌이다.
1) 설교자로서의 목회자
예수께서는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며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다. 로마서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롬 10:17). 그렇기에 사람들이 듣도록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 말씀, 특히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은 목회자의 최우선적인 사역이다. 이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많은 기도, 겸손한 자세, 성령의 지혜와 은사가 필요하다. 또한 성경 자체를 잘 이해해야 하는데, 원어 연구와 훌륭한 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설교자에게는 소통의 능력이 필요하다. 소통은 성경과 현대 세계, 복음과 문화 사이에 다리놓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존 스토트). 목회자의 가슴은 자기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으로 불타올라야 하며, 시선은 그리스도께서 만들어가시는 현재와 미래의 교회와 역사를 바라보아야 하며, 귀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영원한 진리’를 교인들이 듣고 이해하여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
2) 예배자로서의 목회자
예수께서는 일평생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으며(요 17:4) 예배자의 모범을 보이셨다(요 17:6-8). 체포되시기 직전에도 제자들과 함께 예배하시고, 성찬식을 거행하셨으며, 하나님을 찬미하셨다(마 26:17-30). 따라서 목회자는 예배자이며, 동시에 좋은 예배인도자가 되어야한다.
사람들은 예배와 성례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회심에 이른다. 이것이야 말로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사람들이 얻는 유익이다. 예배를 통한 회심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참된 부흥을 경험한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출석수와 헌금액수와 건물의 크기가 아닌 하나님 체험으로 인한 삶의 변화로 평가되어야 한다.
성찬과 세례의 성례전은 하나님의 은총을 가시화하여 구원의 역사성과 교회의 사명을 깨닫게 하는 주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인데, 이 사명은 오직 교회가 받았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이 성례전이 바르게 준비되고, 집행되는 것을 책임지는 사역자이다. 성례는 경건하고 거룩해야 하며, 질서있고 이해되어야 한다. 가능한 자주 할수록 좋으며, 찬송과 기도와 설교와 성례전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예배는 목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예배의 신학을 명료화하고, 모든 사역자들과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럴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은혜롭고, 열정적이며, 체험적이고, 감동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믿는다. 목회자를 비롯하여 처음 기획이 이를수록 좋고, 적합한 팀을 훈련시켜야 하며, 다양한 헌신자들이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 목자로서의 목회자
예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이며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 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언급하셨다(요 10:10b). 또한 부활하신 후에는 베드로를 만나셔서 “내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요 21:15-17). 이 구절들은 교인들의 구원과 삶을 돌보며,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돕는 것이 바로 예수께서 부르신 목회자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목회자는 교인과 성도를 ‘목사의 양’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들은 ‘주님의 양’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직접 들었던 베드로는 여러 장로들과 목회자들에게 거만하지 말고, 억지로 하지 말고, 더러운 이익 때문에 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목회자는 청지기와 양으로써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벧전 4:1-4). 본때를 보이는 것이 본을 보이는 목회의 가장 큰 적이다. 이점에 있어서 목회자는 외식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참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이시며 사랑과 섬김의 종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4) 코치로서의 목회자
예수님의 중점 사역은 12명의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을 부르시고 각각 은사를 주셔서 부르시는데,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설명한바 있다(엡 4:12). 이것이 제자훈련의 목표이다.
교회 내에는 제도, 재정, 건물, 주차장 등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자원들도 필요하다. 우리 교회는 지금 이러한 물리적인 상황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본질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대에 따라 봉사의 일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사용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일에 실패할 때 북미와 유럽의 교회들처럼 “화석(化石) 교회” 혹은 “박물관 교회”로 전락할 수 있다. 좋은 교회는 비행기를 실어 나르는 항공모함과 같다. 파송 교인의 수가 많을 때, 훌륭한 교회이다(Gaining by Losing).
성도들은 예배, 심방, 제자훈련, 성경공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목회자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한편, 이런 훈련과 은혜로운 체험을 통해서 위로와 은사와 지식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교회와 성도를 부르신 그리스도의 뜻에 부적합한 것이다.
목회자가 드러나기 보다 교인들이 더 드러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그렇기에 목회자의 이미지는 기업의 CEO라기 보다 코치(Coach)나 길안내자(Guide)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무대를 만들고 교인들이 그 무대에서 활발히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꿈을 나는 오늘도 꾼다.
5) 영성가로서의 목회자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하셨으며, 광야에서 40일간 머무시며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다(마 3-4장). 바쁘신 활동 중에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막 1:35).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에도 성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막 14:32-42). 이처럼 예수님은 한결같이 깊은 영적 교제를 성부 하나님과 나누셨다.
목회자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살피고 깊은 영성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자신 안에 영성의 샘물이 사라질 때, 교인들에게 영적인 물을 전해 줄수 없다. 자격과 위치가 아니라, 깊은 영성이 목회를 가치있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교황으로 지명된 첫번째 수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 1세는 『The Book of Pastoral Rule』이라는 책에서 다음을 권면한다. “지도자들은 외적 문제들에 몰두하여 내적 생활에 태만해지거나 내적 생활에 대한 갈망으로 외적 문제들에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외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내적으로 피폐해지고, 반대로 내적 자아에만 정신을 빼앗기면 이웃들에게 필요한 외적 돌봄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가정의 중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과 가족관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로서, 사람의 출생, 성장, 문제, 죄악, 타락, 치유, 회복, 죽음과 같이 사람의 존재성과 영성에 있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성경은 가족으로서 지켜야 할 교훈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언급하고 있다. 특히 신약성경은 교회의 직분자들의 가정생활을 살피라고 말한다(딤전 3, 딛 1).
II.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목회비전
내 목회 비전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사명을 균형있게 이루는 것이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사명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 사명은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선교이다(행 2장, 4장).
나는 이 다섯가지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즉 ‘내면의 영성’(예배와 교육)과 ‘외면의 영성’(친교, 봉사, 선교)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이 두 영성 중에 우선적이며 근원적인 것은 ‘내면의 영성”이다. 외면의 영성은 교회의 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내면 영성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Dwell이라는 책은 이 점을 잘 설명해 준다. 최근 유행인 Missional Church의 핵심이기도 하다.
워싱턴 D.C.의 세이비어교회(Savior Church)는 20세기 이후 이러한 구조를 오랫동안 그리고 성공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는 교회로 유명하다. 세이비어 교회는 교인 수가 150명 이상이 넘은 적이 없었는데, 200여개 사역을 이웃을 위해 진행하고 있으며, 1년에 1500만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Inward and Outward”(안으로 그리고 밖으로)는 이 교회의 중요한 모토 중에 하나인데, 매일 기도와 묵상의 영성수련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을 들은 후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을 이루기 위해 교인들 각자 세상에서의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1. 내면의 영성
1) 경건의 토대로서의 예배
교회의 핵심 가치는 예배를 통한 하나님 체험(Divine experience)이다. 성도들은 공예배와 개인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많은 경우 설교 중심의 예배와 목사 중심의 예배를 강조하면서, 설교와 축도 등의 목사가 하는 특정한 내용을 다른 예배의 요소들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겨왔다. 찬양의 방법, 악기의 선택, 좋은 악기나 환경 등은 이런 예배의 영성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예배 전체에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에 대한 메세지와 회중의 응답으로 가득해야 한다.
2) 통전적인 제자훈련으로서의 교육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제자화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는 말씀에 들어있다. 신앙교육은 통전적이며, 전인격적이며, 장기적인 전략과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과정과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②“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엡 4:13-15).
베드로후서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5-7, 9).
1.5세와 2세 교육을 위한 재정과 공간이 현재로는 너무 미미하고 불량하다. 특별히 KM과 EM에 속한 젊은 부부들을 향한 신앙 훈련과 사귐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30대와 40대가 약한 교회는 지속적인 성장을 확보하기에 어렵다.
2. 외면의 영성
1) 사랑으로 맺어진 친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기도하셨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처럼, 사랑과 은혜로 하나된 성도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주님의 요청이다.
교회 내의 친밀함은 영적인 사귐이라는 점에서 세상과 다르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서로의 아픔까지도 품어주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2) 지역사회를 치유하는 봉사
지역의 영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빈곤 등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가 노력하는 것은 성경의 명령이다. 미국 복음주의자 Jim Wallis와 Sojourners라는 기독교 잡지 팀에 의하면, 구약성경에서 우상숭배 다음으로 자주 다루는 주제는 빈곤한 자를 위한 정의이다. 신약에서는 같은 주제가 열여섯에 한 절씩 등장한다. 공관복음에서는 열에 한 절 꼴로 등장하며, 누가복음에서는 일곱 절에 한 번씩 등장한다. 성경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와 같은 구제와 치유와 봉사 사역의 필요성은 계속되고 있다.
3) 협력을 통한 선교(전도)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가서” 그들을 제자삼으라고 말씀하셨다(마 28:18-20). 그리고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시며 보내시는 하나님(Sending God)과 보냄받은 제자의 정체성을 말씀하셨다. 이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현대 교회는 Glocal(Global + Local) 전략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점도시를 책임져야 한다(Center Church).
III. 균형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교회 운영 원리
성경과 교회의 정관(내규)와 전통은 가장 우선적인 교회 운영원리이다. 우리 교회는 초교파 교회이기에 교단의 헌법과 규칙에 얽메이지 않는다. 어떤 제도를 따르건간에, 균형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다음의 다섯 교회 운영 원리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하나님 나라와 교회 목적에 따르는 원리
목사의 카리스마, 권위, 조직, 전통, 건물, 재정 등이 교회를 운영하는 원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은 필요하긴 해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 제자 삼는 사명처럼 교회의 설립 목적보다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부서와 제직들이 각각의 부서와 사역에 대한 사명선언문(vision statement)을 작성하고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
2) 은혜와 진리의 원리
하나님의 개입을 신뢰하고 직분자들이 서로 사랑으로 용납할 때, 교회 행정과 운영은 더 가치를 발한다(노스포인트 교회). 교회 내의 분쟁, 무지, 부패, 탈선은 전도와 선교와 교회 부흥의 “가장 큰 적”이다. 교회는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와 은혜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성경과 복음이 말하는 본질적인 진리는 지켜나가야 한다.
3) 동역과 공동체의 원리
교회의 지도자들은 동역의 원리를 따라 서로의 고유함을 인정하며, 인격적으로 존대하고,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 사역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는 공동체에 무익한 자신의 비전으로 교회를 끌어가려는 야망을 내려놓고 공동체 비전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4) 원칙에 따른 의사결정과 재정의 원리
원칙과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계획과 재정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목회자는 교인들의 헌금액수를 알아서는 안되며, 돈으로 목회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헌금의 출입은 평신도 중에 신뢰할 분에게 맡기되 정기적으로 보고되도록 하며, 교회가 정한 회계 원칙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해야 하는 경우, 그 획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5) 선택과 집중의 원리
교회의 성장에 비례하여 사역들은 늘어난다. 백화점처럼 다양한 사역들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럴 때 점화와 점검의 시기와 방법을 갖추어야 혼란에 빠지거나 교회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중요한 교회 사역(들)은 집중적(singular focus), 점진적(gradual process), 지속적(persistent)인 전략과 단계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 사역은 생물처럼 탄생할 때도 있고 사멸할 때도 있다. 어떤 경우이던 목회자의 야망이 아닌 공동체의 소명에 따라야 한다.
후반전 준비: 책 추천 (Half Time)
추천인: 신성철 집사 (2019년 7월 3일)
OKCC 성경학당: 디모데전서 에세이
글쓴이: 신상복 집사 (2019년 6월 18일)
아이티(Haiti) 선교편지
보낸사람: 이동렬 선교사 (2019년 6월 10일)
OKCC 성경학당: 조남종 목사와의 인터뷰
취재 및 편집: 신성철 집사 (2019년 6월 2일)
2019년 봄 원주민 단기 선교
선교보고: 박재홍 집사 (2019년 5월 23일 수요예배 중)
선교위원회 소식지 제2호
글쓴이: 선교위원회 (2019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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